맛이 없어서 소주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것저것 술을 고르는 것도 번거롭고 맥주를 마시고 배만 부른 것보다는 나았다. 진우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신명이 의아한 얼굴로 진우를 돌아보자 진우는 바로 사과의 말을 했다. "미안. 일부러 웃은 건 아니고 내가 신명이 외모만 보고 술 잘 못 마실 거라고 편견을 갖고 있었나 봐." 이...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걸 느낀 신명은 대화창을 살펴보았다. [축하드려요] (오후 5:20) [장진우 선배: 고마워] [장진우 선배: 신명이한테 축하한다는 말 듣고 싶었어] (오후 5:21) [장진우 선배: 목요일 저녁에 과 사람들이랑] [장진우 선배: 간단히 술자리 갖기로 했는데] [장진우 선배: 신명이도 시간되면 올래?] (오후 5:23) [안 바빠...
커튼을 모두 걷은 지운은 핸드폰을 간단히 확인한 후에 머리 위로 팔을 잡아 당기거나 양 쪽으로 허리를 늘리는 등의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을 했다. 신명은 이불을 눈 바로 아래까지만 끌어올렸다. "그러고 다 벗고 돌아다니지 말고 옷 좀 입지?" "다 안 벗었는데? 바지 입었잖아." "아우! 제발! 좀!" 지운은 신명을 보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랫눈꺼풀을 끌...
"아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련님 같은데 의외의 면에서는 전혀 도련님 같지 않네." 상냥한 얼굴로 생긋 웃으며 말하는 지운에게 신명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그러면, 그렇게까지 권하는데 사양하지 않고 집 주인 침대에서 잘게." 결국 두 사람은 불 꺼진 어두운 방 안, 커다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침대 바깥쪽에는 지운이, 벽과 맞닿은 ...
"........" 지운은 조금 의외였다. 언제나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처럼 가뜩이나 치켜 올라간 눈매를 사납게 뜨고 날이 선 말투로 이야기를 하던 신명이 이렇게 순하디 순한 갓 태어난 아기 양 같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지운은 입만 어색하게 웃으며 눈동자를 옆으로 데구루루 굴렸다. "으...... 응? 안 미쳤지?" "다행이다. 이번엔 진짜로 미친 줄 알...
잠시 후, 고통이 잦아든 신명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드레스룸까지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그 짧은 걸음을 비틀거렸다. 신명은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며 서랍에서 깨끗하게 세탁해 놓은 드로어즈를 꺼내 입은 뒤 얇은 면 소재의 파자마 바지와 적당한 홈웨어 티셔츠를 골라 입었...
신명은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고 학교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공부를 잘 했으며 자기 일을 스스로 잘 했다. 어렸을 때처럼 귀신이 보인다며 비명을 지르며 한밤중에 부모님의 침실로 달려가거나 이상한 말을 해 어른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창백한 낯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갑자기 공포에 질려 식은 땀을 흘리거나, 알 수 없는 혼잣말을 ...
의뢰인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코인 세탁소에 들러 안양천으로 가는 길에 건조기에 돌려 두었던 빨래를 찾아왔다. 열심히 청소하고 묵은 빨래를 끝낸 의뢰인의 집은 몰라 보게 깨끗해지고, 쾌적해지고, 공기가 맑아졌다. 지운은 마지막 마무리라며 편의점에서 사 온 섬유탈취제를 집 안 구석구석에 뿌렸다. 약속한 4시간이 흐르고 의뢰인이 집으로 돌아왔다. "우와......
혼자 산속을 헤맨 지 닷새가 지났어. 여름의 끝자락이라 날이 춥지는 않았지만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파. 배가 너무너무 너무 고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어. 사료를 배불리 먹고 싶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쿠션에 누워 볕을 쬐면서 편안히 쉬고 싶어. 산고양이와 들쥐는 너무 사납고 무서워. 너는 음식 냄새를 맡았어. 시큼하고 썩은 듯한 냄새였지만 너무 ...
단숨에 빌라까지 달려온 신명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의뢰인은 집 현관문은 환기를 위해 여전히 활짝 열린 채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확연히 공기가 맑아지고 악취가 많이 사라졌었다. 역시 오랜 시간 빨래하지 않은 옷과 침구류 등이 악취의 주된 원인이 듯싶었다. 신명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을 열심히 청소 중인 지운의 너른 등이 보...
"아... 제 생각보다 좀 비싼데..." 남자가 조금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지운은 능숙하게 고객의 마음을 잡아 당겼다. "평균적 시세보다 저렴한 편입니다. 지금은 이 가격에 가능하시지만 귀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떼어내기 힘들어지고 떼어내기 힘들어질수록 추가 요금이 발생합니다." "....... 제가 이 집에서 이사 가면 어떻게 돼요?" "귀신도 고객님이랑 ...
[내일을 위한 선택, 내 일을 위한 선택 기호 1번 장진우/전세림] 신명은 벽에 붙은 단과대 학생회 선거 포스터를 보았다. 검은색 정장에 흰색 셔츠를 입은 진우와 세림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어색한 듯 희망차게 웃고 있었다. 세림이 썩은 동아줄 선배의 러닝메이트인 모양이었다. 이제 이름을 알아서 진우에게 투표해 줄 수 있게 되었다. "포스터 잘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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