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들어오는 늦은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은헌이 잠에서 깼다.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거려 옆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을 찾았지만 텅 빈 이불만이 만져졌다. 은헌은 부스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승은 침대 아래에 깔아 놓은 이불에서 자고 있었다. 현승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일어났어?" "응. 근데 왜 밑에서 잤어?" 몸을 일으켜 앉...
"음... 으윽... 으으으... 으으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현승은 잠결에 낮은 신음을 들었지만 잠에 취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새벽 2시가 넘어 잠들어 몸이 너무 피곤했다. "으... 으.... 으.... 으음..." 신경에 거슬리는 이상한 소리에 현승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 소음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 했다. "우우... 우욱-!" 현승...
현승은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속쌍꺼풀진 눈, 오똑하고 콧방울이 좁은 코, 갸름한 턱선, 하얀 피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지만 채은헌의 누나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은헌이 누나되세요?" "이거나 놓고 말하지?" "아, 죄송합니다." 현승은 잡고 있던 손목을 놓고 형식적으로 사과했다. "전 은헌이 친...
[실전 연애 01]을 그냥 한 편으로 올렸었는데, 15,000자 정도 되는 걸 한 번에 읽으시기 불편하실 거 같단 생각이 들어 [실전 연애 02]는 여러 편으로 쪼갰어요. 그런데 쪼개다 보니 별거 없는 꾸금씬을 성인으로 따로 빼느라 길지도 않은 이야기기가 편수가 엄청 많아졌네요. 민망해서 주절주절 변명을 떠들고 갑니다. 읽어 주시고, 구독, 좋아요 눌러 주...
실내에서 따뜻한 핫초코로 몸을 충분히 녹인 우리는 본격적으로 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는 잠시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털어내려고 일부러 더욱 활기차고 의욕적으로 행동했다. 날씨가 추워 운행 정지 중인 놀이 기구도 많았고 동물원 우리에 나와 있지 않은 동물들도 많았다. 벌벌 떨면서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탈 현승을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된 거 같았다. 우리는 실내...
새해 첫날. 스무 살이 되었다. 나는 병신처럼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새해 첫날은 새로운 결심을 실천하는 날,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란 핑계로 남현을 만나러 갈 용기를 낼 수는 있었다. 더이상 현승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은 마주쳐 보기로 했다. "어디 가냐?" 새해를 맞아 서울에서 자취하는...
오늘도 현승은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붉은 노을이 땅 위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간간이 부는 겨울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스산한 소리를 만들었다. "저기... 남현... 잠깐 얘기 좀 할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뗐다. 앞만 보고 걷고 있던 현승이 약간 뒤쪽에 서 있던 나를 천천히 돌아보면 언제나처럼 부드...
정신이 멍했다. 땀도 많이 흘리고 그... 액체도 많이 흘려서 가볍게 샤워하고 현승의 옷을 빌려 입었다. 교복도 땀과 그... 액체가 많이 묻어서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학교에 안 가는 날이라 다행이다. 사건의 현장에 계속 있기 민망해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너무 흥분한 거 같았다. 이 정도로 흥분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스스로는...
나는 교실로 돌아가면서 봉투 속에 든 목도리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뭔가 답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근데 걔 반도 이름도 모르는데 어쩌지? 아까 나를 불러낸 걔가 친구라고 했으니까 걔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교실로 돌아가자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쳤다. "채은헌 대박인데? 누가 불러낸 거야?" "걔가 뭐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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